트루먼 쇼는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작된 사회에서 자신의 인생을 사는 트루먼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트루먼이 진짜 인생을 찾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도처에 있지만 트루먼이 이를 극복하고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영화 같은 인생 영화가 된 인생
사람들은 흔히 인생의 굴곡이 많았던 사람들에게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인생을 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태어나서 걷고 사랑을 하는 순간까지 24시간을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영화 속 트루먼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냥 즐길 거리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각한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됐든 트루먼 쇼는 한 인간의 삶을 통째로 보여주겠다는 연출자 크리스토프의 의지가 강력하게 반영된 결과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삶에 대해 약간 통제된 것일 뿐 현실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트루먼이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대학 시절 사랑에 빠졌던 실비아가 한 말을 듣고 이미 자신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실비아는 트루먼과 대화할 수 없는 역할이었지만 트루먼의 사랑 고백을 듣고 그에 대한 연민으로 이 쇼에 대한 진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정신분열증 환자로 쇼에서 배제됩니다. 30세가 된 트루먼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서두르지만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지고 라디오에서는 자신의 행방을 추적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이내 정정 멘트가 나오지만 전파 오류로 지나는 행인이 모두 일시정지해 버리는 일도 생깁니다. 주변이 모두 의심스러운 트루먼은 아내와 친구에게 사연을 말하지만 그들은 상품의 간접광고에 최선을 다할 뿐 트루먼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결국 트루먼 자신을 진심으로 대했던 실비아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습니다. 자칫 쇼가 막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크리스토프는 어릴 적 죽은 것으로 정리된 트루먼의 아버지를 재등장시켜 트루먼을 막아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에게 물에 대한 공포를 심어 놓고 세트장인 섬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찾아 나서는 트루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트루먼은 영화가 된 자신의 인생과 그동안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세트를 벗어납니다.
영화 속 상징물
영화는 트루먼이 30세가 되는 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30세를 한자로 이립 혹은 입지라고 표현합니다. 인생의 뜻을 세우는 시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트루먼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결국 진짜 세계를 찾아 나서는 의지를 굳건히 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30세쯤이면 삶에 대한 견해가 생기기 시작하는 모습은 동서양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트루먼이 출근하려는데 세트의 조명이 떨어집니다. 이 조명은 세트장에서 시리우스 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큰 개 자리에 포함된 별로 가장 밝은 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시리우스가 나타나는 시기에 강이 범람한다거나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밝은 별이다 보니 항해할 때 꼭 필요한 별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지구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세트장에서 시리우스를 표현한 조명이 떨어지는 것도 영화 전개에서 트루먼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영화가 절정에 달한 부분에서 트루먼이 평생을 살던 섬을 벗아나기 위해 탄 배의 이름이 '산타마리아'입니다. 산타마리아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할 당시 탔던 배의 이름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트루먼도 진짜 삶을 발견하리라는 기대가 담긴 배이름이라고 할 것입니다.
트루먼 쇼 증후군
트루먼 쇼 증후군은 자신을 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망상하는 정신질환입니다. 영화 주인공인 트루먼의 상황처럼 자신도 감시당하고 있고 세상이 조작되었다고 여기는 모습에서 유래한 병명입니다. 그만큼 영화 트루먼 쇼는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트루먼 쇼는 1998년에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지 인간의 창작에 대한 욕구가 반영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쇼는 자본의 관점에서 미디어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들은 출연자들을 동경하여 그들의 일상을 따라 하기도 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을 그대로 소비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쇼는 더욱 자극적으로 진화하고 이를 보는 관객들은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길들여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트루먼은 신대륙을 찾아 나선 모험가처럼 연출자가 설치해 놓은 공포와 불안의 장애물들을 이겨내고 쇼를 벗어난 삶을 선택합니다. 과연 그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누군가로부터 조종당하는 있다는 의심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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